[효고]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고베 야경을 향해
여행을 다니면 보통 그냥 잠에서 저절로 깬 뒤에 일정을 시작하는 편이지만, 이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납니다.
이유는 돗토리에서 히메지까지, 어제처럼 사철 안지나가고 직행으로 가는 특급 하마카제를 타야 하기 때문이죠.
오직 꼭두새벽에밖에 운행을 안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아니면 돈 더 내야 하니까요.
임비선을 따라 가는 기존 노선과 달리 산인 본선을 따라 좀 더 동해안을 달립니다.
사실 전날에도 뜬금없는 불면증으로 잠을 거의 못자서 열차에서 자야지... 했는데
열차에서도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대신 멍하니 멋진 밖의 풍경을 볼 수 있었죠.
어제 살짝 내린 눈구름이 내려오면서 펼쳐지는 풍경은 조용하고 멋집니다.
산인 지역의 풍경은 엄청나게 웅장하고 거대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냥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느낌이죠.
그렇게 일본 성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히메지성에 도착했습니다.
히메지역 주변은 어제 얼추 봤으니 바로 성으로 돌진해야죠.
히메지성은 벽에서부터 기와까지 새하얗게 회칠을 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 흰 모습에 백로성이라는 별명도 있죠.
게다가 천수각 뿐 아니라 성 주변 시설도 잘 보존되어 있어서 천수각이 멀쩡한 성중에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물론 그 웅장함은 오사카나 나고야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거긴 콘크리트 성이니...
정말 일본 과거의 그 성을 느끼고 싶다면 히메지성만한 성이 또 없죠.
주변의 해자나 정원등도 매우 잘 보존되어 있어서 성을 둘러보는데만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천수각을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러러면 엄청난 대기를 뚫고 가야 합니다.
아무튼 정말 모든면에서 참 이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이기도 하죠.
근데 사실 히메지는 히메지성만 보면 대충 볼건 다 봅니다. 그거말고는 볼게 많지 않거든요.
그러니 무리하지 않고 신칸센을 타고 가볍게 고베로 갑니다.
근데 신칸센이 정착하는 이 신 고베역의 낡음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신칸센 정차역에선 거의 구마모토역 급으로 약간 초라한 시설을 자랑합니다.
그나마 지역의 교통의 중심인 구마모토와 달리, 여기는 이 신칸센 말고는 직접 이어지는 지방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하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JR패스로는 이용이 불가능한 사철이기도 하고, 영 맘에 안듭니다.
그럴 땐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갑니다. 전 걸어다니는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신고베역에서 고베의 중심가인 산노미야역까지는 기껏해야 한 정거장 거리니까요.
일본은 길거리에도 이런 앙증맞은 장식들이 많은 것이 참 좋아요.
이곳이 고베의 중심지인 산노미야 역입니다.
각종 쇼핑도 여기서 하고, 어지간한 교통도 다 여기를 거쳐갑니다.
아무튼 이곳도 도시 이름의 역이 실질적인 중심지를 하지 못하는 곳이군요.
그런 고베를 뒤로하고 도착한 곳은 아카시 시에 위치한 마이코역.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일본에서 가장 큰 현수교 중 하나인 아카시 대교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한 때는 아시아 최대의 타이틀도 가졌지만 세월이 흘러 여러가지로 순위는 내려갔지만
효고현의 아와지섬을 이어 시고쿠까지 연결되는 아카시 대교의 거대함은 직접 봐야 느낄 수 있습니다.
근처에 묘하게 근대적인 유적지도 있는데, 한 때 장제스가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일본에 와서 대만의 영웅의 유적지라... 뭔가 미묘하네요.
다리도 대충 봤으니 다시 고베로 돌아옵니다.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잠 부족으로 꽤 많이 힘들었습니다.
거의 두시간밖에 못잤는데 벌써 돗토리, 히메지, 고베, 아카시, 네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장갑같은 것도 잃어버리고, JR패스권도 놓고 내릴 뻔 하고, 난리도 아니었네요.
아무튼 이날 이후로, 여행에서 왠만하면 잠은 잘 수 있을 만큼 푹 자게 되었습니다.
롯코미치역에 온 이유는, 그 유명한 고베의 야경을 보러 오기 위함입니다.
이번 여행의 두가지 목적 중 하나인 일본 3대 야경 관람, 그 두번째 시간이죠.
오르기 전에 일본 맥도날드에서 기간 한정으로 파는 괴식 아보카도 버거를 먹어봅니다.
근데 사실 아보카도 먹어보면 아시겠지만 살짝 느끼한거 말고는 별 맛이 없어서 그렇게 나쁘진 않았습니다.
고베에서 야경을 보려면 두가지 장소가 있는데 하나는 마야산, 그리고 이곳 롯코산입니다.
전망은 대체로 마야산이 더 괜찮다고는 하는데 거기가 가격이 더 비쌉니다. 가기도 애매하고요.
사실 같은 산에 봉우리만 달라서 산 위 도로를 통해 버스를 타고 서로 왔다갔다 할 수는 있습니다.
롯코산을 오르는데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갑니다.
차체 자체가 45도 정도 기울어진 기묘하게 생긴 탈 것이죠.
한국에서 케이블카는 보통 케이블에 매달려서 가는 것을 떠올리는데
일본에서는 이렇게 기울어진 상태에서 바닥의 케이블에 매달려 가는걸 케이블카
케이블에 매달려 가는 것은 로프웨이라고 부릅니다.
미묘하게 호칭이 다르네요. 한국에는 케이블카도 거의 없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 때 처음 탄 탈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진에서도 보셨듯 날씨가 가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구름은 가득 끼고 하루 종일 연무가 껴서 하늘은 커녕 주변도 뿌옇게 보이는 날이었거든요.
게다가 케이블카 내리는 곳에서 전망대까지 걸어서 3km라고 했는데
그 3km가 평지 3km가 아니라 엄청난 경사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3km였습니다.
아무리 걷는걸 좋아하는 저지만 잠도 거의 못 자고 하루 종일 걸어다닌 상태에서 이런 3km는 말도 안되죠.
롯코산 위는 수많은 숙박시설, 멘션, 호텔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로 말이죠. 버블 시대 열심히 지었다가 경기 침체로 이용을 하는 사람이 주는 탓이죠.
아무튼 참 힘든 3km의 분위기도 참 칙칙하고 을씨년스럽습니다. 근데 전 이런거 좋아하거든요. 의외로 힘이 났어요.
열심히 캐리어를 들고 산을 오르는데 중간에 기묘한 불상이 있었습니다.
보통 정신이 박혔으면 버스나 로프웨이를 타고 가기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말이죠.
알고 보니 이곳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승객을 먼저 구조하고 숨진 스튜어디스를 추모하기 위한 곳입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지만 그래도 물과 꽃이 있네요. 그분의 희생을 기립니다.
그래도 혹시 시간이 지나면 구름이 걷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힘들게 산을 올랐는데
날씨는 오히려 낮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시야는 고사하고 눈이 오기까지 합니다.
아직 어두워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데, 날씨는 춥고 손은 시리고 딱히 할 건 없고 몸상태는 최악이죠.
곧 한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눈보라가 되어버립니다.
그야말로 최악이죠. 하루 종일 사고만 치고 피곤해 죽겠는데 야경도 못보고 하루가 이렇게 끝나다니요
아니 눈보라치는 공원의 풍경은 그래도 이쁩니다. 저 타워도 나름 인상깊게 만들었고요. 그래도 정도가 있죠.
여러가지 복잡하고 씁쓸한 감정으로 하차하는 마지막 차를 타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러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구름 밑으로 내려오니 펼쳐지는 고베의 야경...!!
고베 뿐 아니라 오사카만을 따라 이어지는 오사카 대도시권이 한눈에 들어오는 엄청난 풍경입니다.
나가사키의 만을 둘러싸는 조금은 소박한 풍경에 비하면 훨씬 크고 풍부한 야경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하루 종일 너무 고생한게 있어서 더 감정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런게 여행이고 그런게 풍경이고 추억인거죠. 고생 끝에 낙이 오는거니까요!
오늘 하루의 고생과 사고, 실수는 전부 이걸 보답받기 위한 희생이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여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고베역에 갑니다.
고베역도 가고시마역처럼 지역의 항구쪽에 위치한 역입니다. 뭐 생길 당시엔 항구가 가장 중요한 곳이었을테니까요.
그래도 진짜로 주변에 항구말고는 없는 가고시마역과 달리, 이곳은 주변이 대형 쇼핑몰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많은 백화점과 상점가, 유원지 등이 몰려있어 밤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다니죠.
항구 주변에는 모자이크라는 유명한 쇼핑몰과 호빵맨 박물관도 있습니다.
모자이크는 꽤 다양한 상점과 음식점들이 많아서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정말 많죠.
호빵맨 박물관은 며칠 전 호빵맨 작가가 살던 다카마츠를 다녀와서 괜히 더 기억에 남습니다. 이 시간엔 닫았지만요.
그리고 큼지막하고 이쁘게 빛나는 대관람차도 있고요.
그리고 고베의 또다른 명물인 고베항의 야경도 볼 수 있습니다.
고베타워와 고베항, 메리켄 호텔 등의 건물들이 바닷물에 반사되어 멋진 풍경을 자아내죠.
하지만 여행은 아직도 끝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아직도 숙소를 잡지 못했거든요.
사실 고베에서 저녁의 일정이 전혀 정해진게 없어서 숙소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베항도 갈 지 말 지 고민하다 간거고, 갔다 오니까 고베에는 잡을 만한 숙소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또 뜬금없이 오사카로 와버립니다.
참 오랜만에 와서 반가운 남바역.
역시 오사카는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합니다. 역시 밤의 도시에요.
거의 밤 10시가 되는데도 남바 상점가는 북적북적합니다.
이 시간에 이렇게 시끄러운 곳은 기껏해야 이곳 아니면 도쿄 뿐이죠.
하지만 숙소를 잡아야 하는 저에게는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사람이 적어야 경쟁자도 적어지죠.
오사카는 이상한 사람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도톤보리 강 주변만 가도 오사카의 이상한 사람 절반이 있죠.
이날도 진격의 거인 옷을 입은 이상한 사람들이 돌아다닙니다. 저러다 강으로 뛰어들겠죠?
뭐 맨날 질리게 보는거지만 구리코도 한번 찍어줍니다. 이제 풀LED로 쌔끈하게 바뀌었죠.
뭔가 예전의 그 낡은 맛이 없어서 저는 아쉽지만요.
이날은 심지어 부엉이도 보는 묘한 날입니다.
일본은 부엉이를 애완으로 기르는게 불법이 아니라네요. 토끼도 있고요.
그렇게 근처의 호텔 게스트하우스 등등 가봐도 방이 없다는 말만 듣고
결국 겨우 한 곳을 찾아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전날에는 잠이 안왔지만 이날은 푹 잘 수 있었습니다. 아니 안그러면 이상한 날이죠.
아무튼 제 모든 여행 통틀어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고 가장 힘들게 돌아다니고 가장 사고도 문제도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였습니다.
뭐 항상 예상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무계획 여행의 묘미 아니겠나요?